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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니

들렘


아.

강민희가 짧게 소리를 내며 볼을 감싸쥐었다.

어디 아파?

어금니 안 쪽이 자꾸 욱씬거려서.

송형준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.

그거 사랑니 아니야?


사랑니는 누굴 사랑하면 난다는데 너 좋아하는 사람 있나봐.


    사랑니


송형준은 공부를 잘한다. 착하기도 했고, 성실했다. 그만큼 송형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. 강민희는 송형준의 소꿉친구였다. 둘은 서로 옆집 이웃이었고,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친한 사이였다.


병원 다녀 왔어?

응.

뭐래?

매복 사랑니래.

매복 사랑니 엄청 불편하고 아프다던데. 송형준이 울상이 되어 쫑알거렸다. 강민희는 그런 송형준을 쳐다보며 그냥 웃기만 하였다.

처음 사랑니라는 것에 대해 알았을 때는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.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는 이. 사랑니라는 이름도 강민희에게 너무나도 낭만적이게 다가왔다. 그런데 내 사랑은 왜 그렇게 숨어있는거니. 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서 날 괴롭혀. 강민희는 욱씬거리는 사랑니에 표정을 구기며 곧 빼야겠다고 생각하였다.

강민희는 지금 울고 있는 송형준 앞에 앉아 달래주고 있다. 남친이 바람 피웠어. 강민희는 송형준의 손에 휴지를 쥐어주며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였다. 맨날 그렇게 울면서 오는데 왜 만나. 강민희는 말을 하려다 꾹 참았다. 겨우 진정하고 훌쩍 거리고 있는 송형준을 보며 강민희는 마냥 씁쓸하게 웃었다.

퉁퉁 부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강민희를 보고 송형준은 깔깔 웃어댔다. 너 지금 엄청 웃긴 거 알아? 우이아(웃지마). 강민희는 웃어대는 송형준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. 사랑니를 뺀 자리는 여전히 강민희를 괴롭혔지만 빠진 곳이 시원했다.

나 형이랑 다시 만난다. 강민희의 표정이 굳었다. 왜, 왜만나. 그런 사람 만나지마, 형준아. 강민희는 앙다문 입술 사이로 스물스물 빠져나오려는 말을 겨우 막았다. 송형준의 표정이 너무 밝아보였다. 사랑니를 뺀 자리가 왠지 모르게 다시 욱씬거렸다.

"형준아."

결국 입이 열렸다.

"그 사람 만나지마."

송형준의 표정이 한순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.

"갑자기 왜."

대답할 수 없었다. 그냥 싫었다. 송형준이 그 사람을 만나고 다시 울면서 오는게 너무 싫었다.

"그냥 만나지마."

"네가 뭔데."

그러게. 내가 뭔데 이럴까. 강민희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. 18년 동안 떨어져본 적이 없다. 소꿉친구를 넘어서 이제 거의 형제 같았다. 송형준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강민희의 마음 속 애써 버텨왔던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. 표정을 구기다 휙 돌아 가버리려는 송형준의 팔목을 무심코 잡았다.

"놔."

송형준은 이제 강민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. 송형준의 그 표정이 강민희의 마음 속을 찔러댔다.

형준아, 형준아. 그 사람이랑 만나지마. 차라리 나랑 만나자.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. 좋아해서 미안해. 형준아, 형준아. 나 이름 불러줘. 나 확신할 수 있게 강민희라고 한번만 말해줘. 형준아, 좋아해. 미안해. 그 사람이랑 만나지마, 형준아. 응? 송형준. 나 사랑니가 뭔 뜻인지 알 것 같아. 넌 내 속에 너무 깊게 숨어있었고 그래서 난 그게 너라는 걸 몰랐어. 형준아, 제발. 응? 나 좀 봐줘.

강민희는 말하지 않았다. 사랑니가 빠진 곳이 마냥 시큰거렸다.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. 송형준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.

"형준아."

언제였을까, 언제부터 널 좋아했을까. 왜 널 좋아했을까. 너의 그 덤벙대는 부분이 좋았을까. 평소엔 멍청해 보이는데 사실은 똑똑한 네가 좋았을까.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나한테만 그렇게 해준다고 착각이라도 했을까. 형준아, 난 왜 너를 좋아할까.

강민희는 송형준에게로 한발짝 다가갔다.

"그냥 나랑 만나자."

강민희가 송형준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. 당황한 송형준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곧 강민희를 밀쳐냈다.

"강민희 진짜 미쳤, 아니 너 미쳤어?"

금방이라도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내릴 것 같았다. 송형준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.

어, 형. 지금? 응, 갈게.

송형준은 전화를 끊고 강민희를 노려보았다.

"미안해."

이제 더이상 돌아갈 수 없다. 송형준은 눈물을 한두방울 씩 흘리기 시작하는 강민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.

송형준과 강민희의 18년 친구사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. 송형준은 학교에서 강민희를 보아도 철저히 무시하였다. 강민희는 그런 송형준을 보며 욱씬거리는 사랑니가 빠진 곳을 손으로 움켜쥘 뿐이었다.





얜 정말 제정신 아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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댓글 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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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는 왜 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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